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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자율연수휴직 준비

자율연수휴직 준비 2-주변에 알리기

by 드나 2022. 1. 27.

*자율연수휴직을 하는 이유, 신청 절차는 이전에 쓴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글에서는 휴직 신청 이후 할 일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휴직 서류를 제출하고 신청이 완료된 후에야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율연수휴직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해 그게 어떤 건지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고, 무급휴직이라는 말에 용기 있다며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저에게 안 좋은 일이 있나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와중에 중요한 일들을 가볍게 넘기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되고, 나중에 돌이켜보아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글을 적습니다.

 

 

1. 가족들에게 알리기

사실, 저희 가족들에게는 통보를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휴직을 결정한 게 아닙니다.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휴직할 생각이었고, 저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글(교사 자율연수휴직 준비 1 - 예산 짜기)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더욱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경제적 준비를 했고, 가족들에게 의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1년만 쉬는 것이기에 더욱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실수를 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휴직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걱정을 꽤 많이 하셨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무급휴직을 할 기회가 없어서', '학교를 떠나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고 싶어서', '나를 위해 공부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싶어서',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괜찮은 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시는데 아무리 부모님께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저라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가족 구성원 간에 그리 화목하지는 않아도, 서로 의지할 만큼은 아니어도, 어쨌든 가족인데 제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학교에서 일하는 나의 자세가, 사람들의 생각처럼 쉽고 수월하고 편하지 않다고 말해왔습니다. 매일 매 순간이 어렵고, 무겁고, 버겁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학교'와 '수업'과 '반 아이들'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대화가 부족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평소에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 편이더라도 '제 자신'에 대해서 한 번쯤 이야기했다면 자율연수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으셨을 겁니다.

 

부모님께서는 아직까지 제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겠지요.

 

말 잘 듣게 생겨서 참 말 안 듣는 당신의 자식은, 교사라는 의무감과 사명감에 짓눌려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나'를 챙기고 성장해서 '내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휴직했다는 것을.

 

 

2. 학교에 알리기

휴직 서류를 제출하고 일단 학년부장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다른 반 선생님들께도 말씀드렸습니다. 1년 간 함께 지낸 정도 있고, 참 괜찮은 동학년을 만나 인간적으로도 사이가 좋았기에, 다른 곳에서 우회적으로 제 소문을 듣기 전에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휴직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중 한 가지 제 행동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근무 중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인품 좋으신 분 밑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휴직하면서, 인사를 먼저 하러 가지 않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친목회도 없어졌고, 교장 선생님과 사적인 교류도 없었고, 업무적으로도 마주칠 일이 자주 없었으나, 뜬금없는 휴직 얘기에 교장선생님께서 교실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진작에 찾아뵙고 말씀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반 아이들에게 알리기

아. 이것이 바로 이 글을 쓴 이유입니다. 가장 뼈아픈 실수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교사로서 큰 사랑을 끊임없이 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휴직 전에 너무너무 미안한 일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반 아이들에게도 미리 얘기해줬어야 합니다.

 

제가 미리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대자면, 휴직을 한다고, 내년에는 이 학교에 없다고, 말하기가 겸연쩍었습니다.

 

아이들이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빼앗으면서까지 이야기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침시간이나 종례 시간에 말할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 되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될 테고, 종업식이 다가올수록 이별할 준비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교사라면 '마음'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무겁다고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기에 마음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게 돕고, 쉽게 망가지거나 무너지지 않을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여러 친구들의 마음과 마주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을 기회를 만들어주고, 상처를 받으면 치유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종업식이 되어서야 제 휴직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랬더니 몇몇 아이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습니다. 하얗게 질린 것도 같았습니다.

 

"왜 아무 말 안 해주셨어요..!"

 

한 아이가 너무나 속상해하면서 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마 계속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더라도, 이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억에 남습니다. 계속 같은 학교에 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딱히 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학교에 나오기만 하면 마주칠 수도 있고, 보고 싶을 때 직접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휴직을 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예 학교에서 사라지는 셈이 됩니다. 1년 후에 돌아온다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까마득한 기다림입니다. 

 

미리 휴직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작별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어른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마십시오. 반 아이들 모두는 아니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선생님을 애틋하게 생각해서 헤어지는 걸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고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마음을 잘 도닥여 주시길 바랍니다.. 

 

직접 만든 무지개 하트를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사진
Sharon McCutcheo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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